하얀 돌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이탈리아 남부의 작은 마을 알베로벨로는 마치 동화 속 한 장면처럼 보입니다. 원뿔 모양의 회색 지붕 아래 흰 벽돌집들이 줄지어 서 있는 모습은 세계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없는 독특한 풍경입니다. 이 작은 마을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이유는 단순한 아름다움이 아니라, 인간의 지혜와 역사, 그리고 공동체의 삶이 고스란히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이 작은 마을에 대해 이야기 해보겠습니다.
1. 남이탈리아의 햇살 아래 피어난 하얀 마을
알베로벨로는 이탈리아 남부 풀리아 주에 위치한 인구 1만 명 남짓의 작은 마을입니다. 이곳을 찾아가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온 마을을 뒤덮은 흰색 건물과 회색 원뿔 지붕입니다. 멀리서 보면 눈부시게 빛나는 마을이 언덕 위에 자리 잡고 있고, 가까이 다가가면 돌을 한 장 한 장 쌓아 만든 집들이 줄지어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트룰리 집이라 불리는 이 독특한 건축물은 석회암을 이용해 지어졌습니다. 이 지역의 돌은 다루기 쉬워 건축 재료로 적합했고, 현지 주민들은 모르타르나 시멘트를 쓰지 않고 돌을 하나하나 쌓아 올리는 방식으로 집을 만들었습니다. 이렇게 만든 이유에는 역사의 아이러니가 숨어 있습니다. 16세기 당시 이 지역은 나폴리 왕국의 지배를 받고 있었고, 건물에 세금을 매기기 위해 벽돌과 석조 구조물이 있는지 확인했습니다. 그래서 알베로벨로 사람들은 세금을 피하기 위해 언제든 쉽게 해체할 수 있는 집을 만든 것입니다.
이런 이유로 지어진 트룰리 집은 단순한 주거 형태를 넘어, 지혜로운 생존의 결과물이었습니다. 돌로 쌓은 벽은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하며, 두꺼운 지붕은 단열 효과가 뛰어났습니다. 시간의 흐름 속에서도 트룰리 집들은 무너지지 않고 세월을 견뎠고, 지금은 세계가 주목하는 건축유산으로 남았습니다. 햇살 아래 반짝이는 하얀 마을은 단순히 아름다운 풍경을 넘어, 역사와 삶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공간입니다.
2. 트룰리 건축의 비밀과 상징
트룰리 집의 가장 큰 특징은 원뿔 모양의 지붕입니다. 회색 슬레이트를 층층이 쌓아 만든 지붕 위에는 흰색 기호나 십자가 모양이 그려져 있습니다. 이 무늬는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고대의 상징이자 마을 사람들의 신앙을 담은 표시였습니다. 태양, 달, 별, 그리고 그리스도교의 상징들이 그려져 있었으며, 집을 지키고 악운을 물리친다는 의미를 담고 있었습니다.
또한 트룰리 집의 구조는 매우 과학적이었습니다. 벽 두께는 1미터에 달하고, 지붕은 공기층을 형성해 외부의 온도를 차단했습니다. 바람이 잘 통하도록 창문을 작게 내고, 내부 천장은 돔 형태로 만들어 공기의 순환이 원활하게 이루어졌습니다. 돌을 겹겹이 쌓은 구조 덕분에 지진에도 강했습니다. 모르타르를 쓰지 않았기 때문에 충격을 흡수하고 유연하게 움직일 수 있었던 것입니다.
흥미로운 점은 트룰리 집이 한 채씩 따로 존재하기보다는 여러 채가 모여 하나의 마을을 이루고 있다는 점입니다. 집과 집이 맞닿은 골목길을 따라 걷다 보면 서로의 지붕이 이어지고, 돌계단을 따라 오르내리며 자연스럽게 이웃과 교류하던 옛 생활방식이 떠오릅니다. 이는 단순한 건축양식을 넘어 공동체의 문화를 상징하는 형태입니다.
알베로벨로 사람들에게 트룰리는 단순한 집이 아니라 가족과 이웃이 함께 살아가는 공간이자 세대와 세대를 잇는 전통의 상징입니다.
오늘날에도 일부 트룰리 집은 여전히 주거지로 사용되고 있으며, 일부는 숙소나 상점으로 변신해 관광객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본래의 구조와 형태는 엄격하게 보존되고 있습니다. 이는 단지 옛 모습을 유지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지역의 역사와 정체성을 지키기 위한 이들의 자부심이기도 합니다.
3. 유네스코가 인정한 마을, 동화처럼 살아있는 유산
알베로벨로의 트룰리 마을은 1996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단순히 건물의 독특함 때문이 아니라, 인류가 환경에 적응하며 만들어낸 건축적 지혜와 공동체적 삶의 방식을 완벽히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다른 지역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독자적인 양식과 보존 상태, 그리고 현재까지 이어지는 생활문화가 높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마을의 중심에는 리오네 몬티와 아이아 피콜라라는 두 구역이 있습니다. 리오네 몬티는 상점과 숙박시설이 밀집해 관광객이 많이 찾는 지역이고, 아이아 피콜라는 현지 주민들이 실제로 거주하는 조용한 구역입니다. 좁은 골목길을 따라 걷다 보면 상점마다 손으로 만든 도자기, 와인, 올리브 오일 등이 진열되어 있고, 집 앞에는 화분과 꽃들이 놓여 있습니다. 밤이 되면 집 안의 조명이 켜져 마을 전체가 따뜻한 빛으로 물듭니다.
그 모습은 마치 한 폭의 그림 같습니다.
트룰리 마을을 방문한 사람들은 입을 모아 말합니다. 이곳은 단순한 여행지가 아니라,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살아있는 공간이라고. 실제로 알베로벨로 주민들은 여전히 트룰리 안에서 생활하며 그들의 전통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관광이 발달했지만, 마을 사람들은 상업화보다는 보존에 무게를 두고 있습니다. 덕분에 이곳은 여전히 과거의 정취를 간직한 채 여행자들에게 특별한 감동을 전하고 있습니다.
트룰리의 풍경은 화려하지 않지만, 그 안에는 인간의 지혜와 세월의 이야기가 녹아 있습니다. 단단한 돌집 아래에서 이어온 삶, 그리고 세월을 견디며 지켜온 공동체의 정신이 바로 알베로벨로를 유네스코가 인정한 이유입니다. 마치 시간이 멈춘 듯 고요한 골목길을 걷다 보면, 이 작은 마을이 왜 세계문화유산으로 남아야 하는지를 자연스럽게 느끼게 됩니다.
이탈리아 알베로벨로의 트룰리 마을은 돌과 햇살, 그리고 사람의 손이 만들어낸 완벽한 조화의 공간입니다. 하얀 벽과 회색 지붕이 이어지는 풍경 속에서 인간의 지혜와 자연의 아름다움이 공존합니다. 그곳을 걷는 일은 단순히 여행이 아니라, 인류가 남긴 삶의 흔적을 직접 마주하는 경험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