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는 시장 곳곳에서 쉽게 볼 수 있었던 물건들이 이제는 거의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시대의 변화와 함께 사라져가는 전통시장 아이템들을 기록하며, 그 안에 담긴 사람들의 삶과 시간을 되짚어보았습니다.
1. 양철 그릇과 주물 냄비가 사라진 자리
전통시장을 돌다 보면 한쪽 구석에 먼지가 쌓인 양철 그릇이나 주물 냄비가 놓여 있는 모습을 간혹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예전에는 이런 그릇과 냄비가 시장의 필수품으로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양철로 만든 대야나 그릇은 튼튼하고 오래 쓸 수 있어서 세숫대야, 빨래통, 음식 담는 용기 등으로 다양하게 사용되었습니다. 주물 냄비 역시 묵직한 무게감 덕분에 밥을 지을 때 밑이 눌지 않아 주부들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스테인리스나 플라스틱, 실리콘 등 새로운 재질의 제품이 등장하면서 이런 양철 제품들은 점점 설 자리를 잃었습니다. 현대인들의 생활은 가볍고 세련된 디자인을 선호하게 되었고, 무엇보다 관리가 쉽고 세척이 간편한 제품이 인기를 끌었습니다.
시장의 양철 공방은 점차 문을 닫았고, 남은 몇몇 상인은 오래된 재고를 팔며 근근이 버티고 있습니다.
이런 물건이 단순히 ‘옛날 물건’으로만 치부되기엔 아쉬움이 큽니다. 그 속에는 세월의 흔적과 사람들의 생활 방식이 고스란히 배어 있습니다. 양철 대야의 금속 소리, 주물 냄비의 묵직한 질감, 그 물건을 쓰던 사람들의 손때와 정성이 모두 전통시장이라는 공간을 더 풍요롭게 만들었습니다. 사라져가는 물건을 통해 우리는 ‘물건의 수명’이 아니라 ‘기억의 수명’을 되새기게 됩니다.
2. 손으로 만든 것들의 시대, 수공예 잡화의 퇴장
전통시장 한켠에는 늘 손으로 만든 물건들이 있었습니다. 대나무로 엮은 바구니, 짚으로 만든 신발, 손바느질로 완성한 앞치마나 장바구니 같은 것들입니다. 이런 물건들은 기능성보다는 정성과 실용의 균형으로 평가받았습니다. 사람들은 하나하나 손으로 만든 물건을 고르며 그 안에 깃든 사람의 마음을 느꼈습니다.
그러나 대량생산 체제가 일상화되고 온라인 쇼핑이 생활화되면서 이런 수공예 제품들은 점점 설 자리를 잃어갔습니다. 사람들은 빠르고 저렴한 제품을 선호하게 되었고, 직접 만든 물건의 가치는 점차 희미해졌습니다. 짚신 대신 슬리퍼가, 대나무 바구니 대신 플라스틱 통이 그 자리를 차지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몇몇 장인들은 자신들의 손기술을 지켜가고 있습니다. 시장 안쪽 구석의 작은 가게에서는 아직도 대나무를 다듬는 장인의 손놀림이 이어지고, 오래된 재봉틀 소리가 리듬처럼 울려 퍼집니다. 그들에게 수공예는 단순한 생계 수단이 아니라 삶의 일부이자 정체성입니다.
이제는 보기 힘든 이런 물건들은 단순히 ‘옛날 것’이 아니라, 사람의 손으로 만들어진 세계의 증거입니다. 공장에서 찍어내는 물건이 아닌, 사람의 온기가 깃든 결과물로서 전통시장의 의미를 다시 일깨워 줍니다. 이 물건들을 통해 우리는 단순히 과거를 회상하는 것이 아니라, 손으로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인간의 본능과 아름다움을 다시금 발견하게 됩니다.
3. 기억 속의 소리, 오래된 기계와 도구들
전통시장은 소리로 기억되는 공간이기도 합니다. 믹서기 돌아가는 소리, 전기다리미에서 새어 나오는 증기 소리, 그리고 물건을 두드리거나 손질하던 장인의 손끝 소리까지 시장은 늘 생동감이 넘쳤습니다. 하지만 그 소리를 만들어내던 오래된 기계와 도구들은 이제 점점 사라지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재봉틀과 연탄집게, 옛날식 저울 같은 것들입니다. 재봉틀은 한때 거의 모든 집에 있었지만 이제는 공업용 공장이나 빈티지 인테리어 소품으로나 볼 수 있습니다. 연탄집게는 더 이상 연탄을 쓰지 않는 시대가 되면서 시장에서도 보기 어렵습니다.
저울 역시 디지털로 바뀌면서, 물건을 올리고 쇠추를 달던 풍경은 추억 속으로 남았습니다.
이런 도구들이 사라지면서 시장의 풍경도 함께 변했습니다. 사람들의 손이 닿는 방식, 거래가 이루어지는 리듬, 물건이 만들어지고 팔리는 감각이 모두 달라졌습니다. 과거에는 손과 감각으로 세상을 다루었다면, 지금은 기계와 데이터가 그 자리를 대신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래된 도구들은 여전히 과거의 정직함과 묵직한 아름다움을 담고 있습니다. 오래된 재봉틀의 바늘은 수많은 천을 꿰매며 가족의 생계를 이어줬고, 낡은 저울은 상인과 손님 사이의 신뢰를 상징했습니다. 사라져가는 전통시장 아이템 속에는 단순한 물건 이상의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그것은 시간의 결이자, 세대를 잇는 기억의 유산입니다.
사라져가는 전통시장 아이템들을 기록하는 일은 단순한 추억의 복원이 아닙니다.
그것은 한 시대를 살아낸 사람들의 흔적을 남기고, 빠르게 변하는 세상 속에서 우리가 잃어가고 있는 것들을 되돌아보는 일입니다.
시장은 여전히 살아 있고, 그 속에는 여전히 기억을 품은 물건들이 조용히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